#졸혼 #회사졸업

스스로에게 ‘졸업’을 허락한 사람들






졸업은 그간 걸어온 길에 대한 위로이자 기념이며,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나날들을 위한 구심점이다. 그간 졸업은 학업의 연장선에만 국한되어 있었지만, 현재 졸업은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tv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졸혼’이나 퇴사 후 다른 회사에 입사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회사졸업’ 속에서 새로운 ‘졸업’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에 맞는 ‘프로의식’을 강요받게 된다. ‘~다운’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역할이 압박과 부담,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어쩌면 우리게는 ‘졸업’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백세시대, 우리는 ‘졸업’하고 싶다


한때 ‘백세 시대’라는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단순히 재미로 흘려들을 수도 있는 가사였지만, 어쩐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듯해 공감이 가기도 했다. 바야흐로 도래한 100세 시대, 우리는 거의 모든 생을 가정과 일터라는 특정 공간 속에서 보낸다. 가정은 두 남녀의 약속을 통해, 직장은 개인의 필요와 선택, 회사의 요구가 맞물려 그 일원이 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 둘은 삶에 있어 너무나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이라 여겨져 왔기에, 어쩌면 평생을 함께해야 할 배우자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장생활은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제 이 익숙한 두 가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이혼이나 해고가 아닌 바로 ‘졸업’을 통해서 말이다. 


평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졸업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학업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이는 단계별 과정을 거쳐 다음 단계 혹은 좀 더 고차원의 학문을 위한 터닝포인트 정도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이를 인생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오랜 부부관계에서 졸업해 배우자와의 친분을 유지하되 각자의 독립된 삶을 사는 졸혼, 경쟁과 성과 위주의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적성과 삶을 찾아가는 회사졸업. 한층 길어진 인생에서 부부관계와 직장생활이라는 것 역시 당연하게 영원히 이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새로운 행복 찾기 방법이 아닐까.




건강한 결혼생활을 위한 전환점, 졸혼


1인 가정을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는 포맷이 아니다. 하지만 이 1인 가정에 최근 새로운 선택을 사람들이 합류하고 있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이들은 바로 ‘졸혼’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졸혼이란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졸혼을 선택한 부부는 법률상 부부관계를 유지한 채,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는 2004년 유명 일본 작가의 책에 처음 등장하는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연예인들이 졸혼을 고백하며 화제가 되었고 이제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졸혼이 일본에서 시작된 트렌드라면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결혼 안식년’이란 말이 등장했다. 이는 결혼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각자의 삶을 누림으로써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졸혼과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졸혼의 형태가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증가된 노후시간을 가족이 아닌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육아와 가사로 인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기계발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 그리고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 등이 이혼이 아닌 졸혼을 선택게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졸혼은 매체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출처 : KBS(www.kbs.co.kr)



KBS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에 출연 중인 중견 배우 백일섭은 졸혼 사실을 고백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결혼 38년 만에 졸혼을 선택한 그는 아내와의 우호적인 관계와 가장의 역할은 그대로 이어가며 반려견과 함께 싱글라이프를 유지하고 있다. 




출처 : MBN(mbn.mk.co.kr)



한편, 본격적으로 졸혼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MBN의 ‘졸혼수업’은 두 쌍의 연예인 부부가 등장, 결혼생활로 잊고 살았던 소중한 인생을 찾아주겠다는 기획의도 아래 졸혼 후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졸혼을 통해 단순히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꿈과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점차 깨달아가며 자신의 삶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출처 : SBS(www.sbs.co.kr)



예능 프로그램에서 졸혼에 대한 시도 자체를 신선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이미 오래전 졸혼을 실천해온 부부의 삶을 조명하여 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SBS ‘뉴스토리’에서는 졸혼 5년 차를 맞이한 부부의 모습을 담았는데, 도시탈출을 꿈꾸었던 아내는 5년 전 귀촌하여 자연과 벗 삼아 살고, 한의사인 남편은 차로 1시간 거리의 도시에서 일을 하며 각자의 삶을 즐기는 모습은 평화롭기까지 했다. 


가까이서 보아야 잘 보이는 것이 있는 반면, 멀리 떨어져 보았을 때 더욱 선명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졸혼은 바로 이렇게 서로에게서 떨어져 삶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상대방을 보다 깊게 이해하게 하는 촉매제가 되어줄 수도 있다. 앞으로 졸혼이 이혼의 임시방편이 아니라 건강한 결혼생활을 위한 회복의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사와의 관계를 바꾸는 첫걸음, 회사졸업


소위 잘 나가는 신문사에 다니던 직장인은 30년 가까이 잘 다니던 회사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와 다시는 어느 회사에도 입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에 일찍 미용실에 들러 4시간에 걸쳐 파격적인 파마를 하고 공원을 일터 삼아 신문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는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의 이야기다. SBS스페셜에서는 ‘회사를 졸업’한 그녀의 이야기를 다루며 직장과 개인의 관계를 재조명, 많은 현대인들의 공감을 얻었다. 




출처 : SBS(www.sbs.co.kr)



글 쓰는 것이 좋아 입사한 회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던 그녀는 어쩌면 달라져야 하는 건 회사가 아니라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10년 전부터 퇴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회사의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을 분리시키는 과정으로, 회사로부터의 자립을 의미한다. 우리가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참는 이유는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월급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입사 초기의 순수했던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쌓여간다. 하지만 그녀는 ‘월급 따위 안 받아도 좋아’, ‘이 회사를 도와줘야지’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일을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퇴사 준비’ 과정을 거쳐 회사를 ‘졸업’했다.  




출처 : SBS(www.sbs.co.kr)



그녀의 선택은 단순히 ‘퇴사’보다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회사에서 독립하는 과정과도 같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참고 견디며 스스로를 성과에 내몰지 말고, 언제든 다가올 수 있는 ‘퇴사’의 순간을 미리 준비하며, 일터와 일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회사졸업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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