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로의 역행 혹은 회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위험한(?) 동행





바야흐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이상하리만치 공존하는 시기. 서로 대비되는 이 두 가지 개념이 화두가 된 때와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과연 디지털이란 무엇일까? 이는 반드시 아날로그와 반대되는 개념일까? 수많은 디지털 기기와 프로그램 안에서 한층 더 편리한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지금, 아날로그적 감성이 오히려 더 많은 이슈를 생산해내고 있는 이유는? 우리는 왜 아날로그적 ‘회귀’를 꿈꾸는 것일까? 




잠깐 우리 생각할 시간 좀 갖자, 디지털!


사전적으로 아날로그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용어’다. 예를 들어 전압이나 전류의 변화·크기 등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반면 디지털이란 라틴어 디지트(Digit)에서 유래한 말로 손가락이라는 뜻을 가지며, 0과 1로 이뤄진 이진법을 사용해 각종 조합을 만든 후,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만들어내고 전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 디지털에 대한 각종 연산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컴퓨터이니, 아날로그로 대변되는 ‘과거’에서 디지털로 상징되는 ‘현재’로의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화를 통해 우리는 생각을 데이터화하여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게 있게 되었고 이는 경제적 가치로 직결되어 대량 생산과 소비를 가능하게 했으며 커뮤니케이션 방식마저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디지털화를 통해 정보를 분류하고 기호화하여 빠르고 간편한 생활을 하게 된 지금, 우리는 이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기호화, 체계화된 세상 속에서 한층 새롭고 경쟁력 있는 것을 찾고 또 찾는 일련의 과정들을 ‘시대의 흐름’이라는 주류에 편승해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어야 하는 것일까?


아날로그로의 역행 혹은 회귀는 바로 이러한 물음에서부터 시작됐다.




우리 다시 만날래, 아날로그?




▲ (윗줄) TV 프로그램 '쎄시봉', (아랫줄) 영화 '쎄시봉'

출처 : MBC(www.imbc.com), 네이버 영화(movie.naver.com)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2011년부터 시작된 ‘쎄씨봉’ 열풍과 작년 한해 ‘응답하라 1988’ 흥행은 아날로그를 열망하는 대중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때 그 시절의 통기타 문화와 이웃의 정이 자유롭게 담벼락을 넘나들었던 과거의 향수가 디지털 시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린 것이다. 0과 1로 데이터화된 세상 속, 이분법으로는 답할 수 없는 ‘가변적’ 상황이 아날로그라는 큰 흐름을 다시금 상기하게 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휴대폰이 없던 시대에도 젊은이들은 각자 알아서 ‘잘’ 연애를 해왔고, 약속을 잡고 만나는 것도 큰 불편함 없이 ‘잘’ 이뤄져왔다. 오히려 1인1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지금, ‘연애=연락문제’가 되었고, 약속의 무게는 깃털처럼 한없이 가벼워졌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을 빨라졌지만, 오히려 직접적인 만남에 대한 필요성은 줄었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시대의 그늘이라 단언하긴 어렵지만, 어찌됐든 사람들이 이제 이러한 ‘기계화’된 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디지털 문화 속에서 한줄기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고 이에 열광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문화적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친해지길 바라!



▲ 디지털 시대의 소통 창구인 각종 SNS



그렇다고 해서 모든 디지털 문화 혹은 기기들을 ‘냉철함’, ‘정확함’, ‘계산적’이라는 단편적 특성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0과 1로 이뤄진 이분법적 세상인 디지털 매체 속에도 엄연히 ‘가변적’ 상황들, 이를 테면, SNS로 연결되는 감정적 교류라든지, 정보의 확산을 통해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 등은 디지털 매체를 수단으로 한 아날로그의 또 다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았을 때 어쩌면 디지털이란 아날로그의 한 부류로서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매개체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디지털=기계’, ‘아날로그=인간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역시 디지털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매우 경솔하다는 사실이다. 광속으로 변화하는 디지털의 흐름에 휩쓸려 전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 창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로 이어지고 진취적·진보적 문화와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려면 아날로그의 유연함과 디지털의 속도가 적절하게 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아날로그로의 회귀는 ‘창조적 사고의 필요성’의 다른 말이며, 좀 더 진화된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